새로운 세계에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이 길에 발을 딛게 되었고 시간이 흐룰수록 나는 보람을 심어왔었다.
내가 부산부녀 장학회와 인연을 맺어 발을 내 딛기 시작한지 어느덧 50여년의 세월이 훨씬 지났다
그때만 해도 장학사업에 뜻이 있어서라기 보다 평소 존경하던 분의 권유라 호기심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따라나섰다
"장학회" 누가 들어도 돈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에 봉사하는 곳이라고 나름대로의 상상을 하면서 따라 나섰건만 막상 내가 처음 맞이한 부산부녀장학회는
나의 상상을 무너뜨려 놓았다
나즈막한 건물에 낡아빠진 벽들을 보며 사무실이라고 들어가 보니 가정집 공부방보다도 더 초라한 모습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었다.
회의 장면을 지켜보는 내 눈에 비친 모습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으니 건빵 몇 알과 난로위의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보리차 한잔으로 점심식사를 떼우고 있었다.
몽당연필로 빽빽이 쓰여지고 있는 회의록 모습을 지켜보며 그 근면 성실에 존경을 금할 길 없었으며 회의 내내 모든 이의 진지한 모습을 지켜본 나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여 순간 나를
전율케 한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전연 새로운 세계에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이 길에 발을 딛게 되었고 시간이 흐룰수록 나는 보람을 심어왔었다.
이렇게 지나치리만큼 초라하게 생활하는 그분들이 일년에 장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내어놓은 금액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고 그것이 40여년을 이어왔다는 사업실적이 나를 감동스럽게 했었다.
단순히 학자금을 지원하다는 차원을 넘어 한번 장학생으로 인연을 맺으면 자신의 딸 인양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하며 생활용품의 지원은 물론
가족이 병이 들면 치료를 주선하였고 걱정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를 해결하려 발로 함께 뛰는 모습에서 장학사업의 참다운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쓰고 남아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쓸 것을 아껴 남을 돕는다는 자기희생의 참 봉사의 모습이 나를 더욱 빨려 들게 했었다.
한때 잠시라도 내가 장학회에 대하여 잘못 인식했던 속마음이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았는가 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었고 이러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나로 하여금 장학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빠져들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제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당시 그래도 정열을 갖고 최선을 다하시던 선배님들께서 한 분 두 분 유명을 달리하시고 지금은 처음 뜻을 세웠던
발기인 지금 장학회의 운영을 책임지게 된 나로서는 지난 세대와 후세의 징검다리 역할을 맡아
있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언젠가부터 강하게 다가왔었다.
그랬다 지금 내게 주어진 어부는 단지 장학회를 잘 이끌어가야 한다는 기존적인 책임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선각자분들께서 어떻게 이 사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되었는가를 후세에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욱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표이사 김광자